에어팟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귀에 콩나물을 달고 다닌다느니, 보청기라느니 말이 많았는데, 막상 써보면 그렇게 편하단다. 한 번 갈아타면 도무지 줄 달린 이어폰으로 돌아가지 못할 만큼 좋단다. 써보지는 않았지만, 언뜻 생각해도 너무 좋을 것 같다. 지하철에서 이어폰 줄이 다른 사람 가방에 얽혀버리는 일도, 무신경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이어폰 줄에 딸린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져 버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 기세라면 20년쯤 지나서 <응답하라 2010>에는 줄 달린 이어폰이 나오지 않을까. 미래의 내 아이는 ‘엄마도 진짜 저런 거 썼었어?'하고 물을지도 모른다. 나는 웃으며, ‘그럼. 저 줄이랑 씨름했었지. 매일 꼬인 줄을 풀고, 그러다 줄이 벗겨지거나 끊어지면 새로 샀어.’라고 말하겠지. 아이는 스마트폰 세대가 삐삐를 보는 눈으로, 나는 옛 친구를 추억하는 눈으로 줄 달린 이어폰을 쳐다볼 것이다.
2018년의 내가 가방 속에 얼마나 다양한 줄을 챙겨 다니는지 아이는 아마 상상도 못 할 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모습은 이렇다. 노트북과 핸드폰을 각각 충전기에 연결하고, 노트북에는 이어폰을 연결해서 음악을 듣고 있다. 익숙한 이 풍경이 가끔은 생경하게 느껴지는데, 그때마다 내가 무슨 환자가 된 건 아닐까 싶다. 링거에 각종 튜브까지 생명유지장치를 줄줄이 달고 있는, 병상의 중증 환자. 잔뜩 꼬인 이어폰 줄을 풀고 있을 때나, 화장실에서 이어폰 줄을 달고 핸드폰을 휴지꽂이 위에 아슬아슬하게 둔 채로 볼일을 볼 때면 내 모습이 미개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줄 달린 이어폰이 멸종해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는 건 좀 씁쓸하다. 줄 없는 이어폰 하나 사는 일은 너무도 별 게 아니다. 20만 원 그리고 5분 정도면 아주 빠르고 간단하게 끝난다. 그 별 것 아닌 사건이면, 20년쯤 함께했던 줄 달린 이어폰을 아무래도 더는 내 인생에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새로 산 아이패드에는 이어폰 잭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에어팟을 못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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