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내 주변에는 '작가'로 살고싶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 꿈을 앞서 살고 있는 선배나 나와 비슷한 꿈을 가진 동료. 그런 게 나한테는 없었다.
인스타툰을 시작하고 온라인 상으로 맺게 된 인연들이 생겼다. 처음에는 서로 좋아요를 남기고 그 다음에는 댓글도 남기고, 그러다 디엠도 몇 통 주고 받게 되었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 작년부터는 연이 차츰 오프라인으로 연결되었다.
<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음>이라는 퇴사 일기를 쓰신 귀찮 작가님과는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안 날만큼 오래 전부터 서로 팔로우하고 있었다. 퇴사 후에는 문경에 멋진 작업실 겸 집을 짓고 살고 계신다. 내적 친밀감이야 혼자 진작에 잔뜩 쌓아놓고 있었지만, 멀리 지내시다 보니 '한번 뵈어요!'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는데..

마침 작가님이 티없는 티타임을 서울 영등포에서 준비하신다는 게 아닌가! 아, 귀찮 작가님은 강연 계의 왕이시기도 하다. 전국 방방곡곡 많이 다니신다. 나는 강연(제안이 별로 들어오지도 않지만)이라면 바들바들 떠는 타입이라 작가님 강연이 늘 궁금했다.

그런데 마침 서울여자 작가님께서도 참석 의사를 밝히셨고..! 나는 이때다 싶어서 바로 참석을 신청했다.
그랬더니 귀찮 작가님께서 끝나고 잠깐 보지 않겠냐고 물어오셨다..?!!? 그러고 며칠 뒤 수세미 작가님, 키드 작가님도 오시기로 했다는 대형 사건을 공유해주셨다..!?!??! 그렇게 만남은 성사되었다.

강연 시작 전에 귀찮 작가님께 싸인을 받았다. 시작 전에 싸인 타임을 퀵하게 진행하시는 걸 보면서 역시 강연 많이 다녀보신 작가님의 카리스마는 다르단 걸 느꼈다. 수줍게 '지수예요, 저..'라고 말씀드리고 수줍게 싸인을 받고 수줍게 돌아와 앉았다..

이번 강연은 즉석에서 질문을 받고 답해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자, 지금부터 질문하세요!"하면 눈알 도르륵도르륵 굴리는 소리만 날 걸 고려하셔서 미리 인스타 스토리로 질문을 받아오셨다. 잠깐씩 공백이 있을 때마다 스토리로 받은 질문에 답변을 해주셨다. 넘나 좋은 아이디어였다!
이전 강연에 참석하시고는 또 오신 분도 계셨다. 그분이 '이전 강연에서 말씀해주신 콘텐츠 철학이 정말 인상 깊었는데, 다시 한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라고 질문을 주셨고, 그 이후에 다다닥 나온 답변이 너무 좋아서 나는 노트를 꺼내 받아적기 시작했다.
그 첫번째는 '나다운 콘텐츠가 지속성의 핵심이다.'였다. 나다운 콘텐츠를 만들 때는 작업이 곧 힐링일 때가 많은데, 하기 싫은 콘텐츠나 내가 들어가지 않은 콘텐츠를 만들어야할 때는 이것저것 따지게 된다. 돈은 벌어야하니 때론 어쩔 수 없지만서도, 그럴 때 참 슬프다.
콘텐츠에서 메시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매일' '손쉽게' 대신 '꾸준히' 콘텐츠를 만드는 걸 철칙으로 여기는 작가님의 생각에 하나하나 공감했다. 어쩌면 그래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다양한 일.

강연이 끝나고는 서울여자, 수세미, 키드 작가님과 인사를 나누고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네 분은 모두 피프툰에 연재하고 계신데, 그래서 서로 구면이었다. 나는 모두 처음 뵙는 거였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자연스러운 공감대가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는 부분이 많다.

구상 중인 콘텐츠 이야기도 나누고, 이 플랫폼이 이렇더라 저렇더라 하는 얘기도 나누고. 비슷한 꿈을 가진 사람들 옆에 있는 것만으로 몽글몽글해진다. 그들의 존재와 연대 자체가 든든하다. 고생스러운 날도 있겠지만 아무튼 다 괜찮을 거고, 언젠가 또 이렇게 모여서 맛있는 걸 함께 먹으며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웃을 수 있을 거라는 그런 막연한 믿음. 그게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강연이 끝난 저녁 8시부터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밀도 있었다.
귀찮 작가님 강연 + 알파 후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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