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많이 읽었다는 게 2018년의 잘한 일이다. 책이 아니었으면 도무지 버틸 수 없었을 한 해이기도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생존 전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종이책을 정말 사랑하지만, 캐나다에서 한글 책은 여의치 않다. 하는 수 없이 난생 처음으로 전자책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간 낯선 것이 아니었다. 빛을 뿜는 액정도, 손에 잡히지 않는 종이도 어색했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정말 보고 싶던 책을 몇 권 보던 것이, 봄쯤 되어서는 코가 꿰이고 말았다. 이제는 전자책 서비스인 '밀리의 서재'를 정기구독하면서, 볼만한 책을 뒤적이는 것이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인 사건이 되었다.
1년간 총 72권을 읽었다. 이렇게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해두었는데, 다시 읽고 싶은지 여부를 표시했다. 이 책들은 다시 읽고 싶은 책!
그 가운데서도 추천하고 싶은 책 다섯 권을 내 맘대로 선정해보았다.
책에 있어서는 호불호가 아주 강한 편이라, 좋아하는 책은 필사까지 해가면서 읽지만 입맛에 맞지 않으면 도무지 읽지를 못한다. 대여섯 페이지 읽으면 나와 맞는 책인지 판가름이 나는데, 읽히지 않는 책은 과감히 덮는다. 세상은 넓고 책은 많고, 내 취향의 책만 읽어도 하루가 모자라다.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두 말 할 것 없이 파울로 코엘료다. (비록 올해 정산엔 못 들었지만..)
1. 나를 찾아줘 - 길버트 플린
길버트 플린은 음울함을 잔뜩 들이킨 알랭드 보통 같다. 사람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재미있어서 술술 읽히면서도,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을 많이 찾을 수 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스럽다. 길버트 플린은 그런 사람이다.
다만 내용이 기괴하고 충격적이라, 토할 것 같은 기분에 자주 휩싸였다. 책이 무슨 디멘터처럼 행복을 빨아가는 느낌이었다. 문장이 너무 좋고, 내용이 흥미진진하고,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버리고 싶은 책이었지만, 내 안의 행복이 다 빨려갈 때쯤 책을 덮고 쉬었다. 그렇게 며칠에 걸쳐 읽었다. 영화화도 되었다고 한다.
"카메라 앵글과 사운드 트랙은 현실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의 감성을 조종한다. 이제는 우리가 실제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지 조차 모르겠다. TV와 영화와 인터넷과 함께 자란 우리는 대부분이 비슷하다. 우리는 배신을 당했을 때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사랑하는 이가 죽었을 때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색마나 건방진 놈이나 바보처럼 굴고 싶을 때 해야 할 말을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낡은 대본을 이용하며 살고 있다."
2. 작고 소박한 나의 생업 만들기 - 이토 히로시
전형적인 (그리고 빡빡한) 삶을 거부한 채, 시골로 내려가서 나름대로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쓴 에세이다. 한 번 읽고 말 줄 알았는데, 무기력할 때 읽으면 신기하게도 의욕이 생겨서 자주 생각이 난다. 소소하고 재미있는 일을 10가지 하면서 살아가는 작가의 삶에 100% 공감하는 것은 아니나, '작고 소박한 일이라도 괜찮아!'라는 느낌이 들어서 책을 덮을 즈음에는 용기를 얻는다.
"자신의 적극성을 소중히 해야만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돈보다 귀중한 자산이 의욕이다."
3. 빨강 머리 앤 - 루시 모드 몽고메리
고전이 왜 고전인지, 왜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지 알 수 있다.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 내내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는 꼭 끼는 잠옷이 싫어요. 하지만 그런 잠옷을 입든, 목에 장식이 있고 바닥에 끌리는 예쁜 잠옷을 입은 누구나 꿈을 꿀 수 있어요. 그게 한 가닥 위안이에요."
4.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 한수희
인생 에세이. 올 해 읽은 책 중에서 필사한 분량이 제일 긴 책이기도 하다. 대체로 마음에 드는 문장 몇 개를 노트에 적는 수준이지만, 이 책은 각 잡고 앉아서 통으로 몇 문단씩 필사했다.
"분명 나의 인생은 배두나의 인생에 비해 별 볼 일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고통과 상처란 가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강도의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머뭇거리다 뒤돌아서거나 숨지 않고, 전력 질주하여 삶의 품으로 뛰어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다 끝내 패배하더라도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널 사랑했어. 나는 정말 널 사랑했어, 어쨌든."
5.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 엘리자베스 길버트
넷플릭스에서 영화나 볼까 뒤적이다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발견했다.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책이 훨씬 낫다'는 평이 눈에 띄길래 영화를 보기 전에 책을 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인생 에세이로 등극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뿐만 아니라 에세이나 순례기까지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도 좋아할 것 같다.
"이제 내게 남겨진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인생에서 내가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들은 무엇인가?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이고, 아닌 부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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