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리랜서 일지

첫 걸음일 뿐이지만 - <그럴 땐 바로 토끼시죠> 비하인드 스토리 1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품은 지 정말 오래됐습니다. 내 이름 걸린 책 하나 가지고 싶다는 가벼운 생각보다는, 쭈욱 책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다짐에 가까웠습니다.

어쩌다 그런 어려운 인생이 살고 싶어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책을 귀하게 여기는 집안에서 자라서인지, 자기 전에 일기 쓰면서 스트레스 푸는 게 습관이 되어서인지, 그도 아니면 딱히 다른 재주를 찾지 못해서인지, 정확한 계기는 알 수 없습니다. 어느 틈엔가 '지수는 글을 참 잘 쓰는구나!'라는 칭찬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책을 처음 내면 두 가지 때문에 놀란다고 합니다. 일단 책 쓰는 게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서 놀라고, 그 다음에는 책이 생각보다 너무 안 팔려서 놀란답니다.

책 쓰는 건 생각보다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반나절 만에 두어장 짜리 글을 쓰고는 이렇게 딱 한 달만 반복하면 책이 나온다는 생각에 우쭐해졌지만, 다음 날은 자괴감 속에서 전날 쓴 글을 통째로 뜯어고쳤습니다. 머릿속에서 단어와 구절, 문장들이 뱅뱅 맴도는 느낌은 어쨌든 좋았고, 깜짝 놀랄 만큼 어렵고 고된 과정은 출판사와 편집자님 덕에 무사히 견딜 수 있었습니다. 재작년 겨울, 출간 제안을 받기 전까지 막연히 독립출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출판사 없이는 틀림없이 평생 원고 수정만 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제 두 번째로 놀랄 일만 남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이 얼마나 팔리느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기도 했고, 돌연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리는 단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원고 작업을 하는 내내 가진 판매량 목표는 따로 있었습니다. 다소 소박한 목표는 '출판사에 폐가 되지 않을 정도로는 팔렸으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이 출판사와 두 번째 책 계약을 할 수 있을 만큼 팔렸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약판매가 며칠 전에 열렸습니다. 원고 마지막 검수가 끝나면 발 뻗고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요 며칠은 더 긴장이 됐습니다. 수시로 도서 사이트들을 들락날락하며 순위와 판매지수를 확인하느라 지금껏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수치에 연연하지 않으려 하지만 너무 궁금해서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예상보다 일찍 예약판매가 열리는 바람에, 반응이 어떨거라 미리 생각해볼 틈도 없었습니다. 뭘 기대했는지 저 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정신 차려보니 감사한 마음만 드는 걸 보면 기대 혹은 우려한 것 보다 좋은 상황인 듯합니다.

예약판매가 열렸다고는 해도, 인쇄소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 <그럴 땐 바로 토끼시죠>는 사실 아직 실체가 없습니다. 그런 무형의 무언가가 진짜 책들과 함께 사이트에 올라가 있는 것만도 영광인데, 그것에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 제가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믿어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무언가를, 특히 책을 '믿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에 더욱 고맙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권의 책들이 소리소문없이 세상에 나왔다가 사라질 텐데, <그럴 땐 바로 토끼시죠>는 탄생도 전에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다니, 복 받은 책이 따로 없습니다.

예약 판매 하루 전, 그러니까 최종 원고가 인쇄소에 넘어가던 날, 편집자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무사히 넘겼다, 그간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메일 말미에는 다음 책 제안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쓰여있었습니다. 독자 반응을 보기는커녕 원고가 채 인쇄되기도 전에, 기가 막히게 기쁜 선물을 전해주신 겁니다. (마감을 꼬박꼬박 지키길 잘했습니다!)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긴 하지만, 그 메일 덕에 당분간 저는 책 하나 낸 백수가 아니라 두 번째 책 작업 중인 작가로 살 수 있게 되었고, 첫 책 <그럴 땐 바로 토끼시죠>는 이미 목표를 달성한 기특한 책이 되었습니다. 이 역시 복에 겨운 일입니다. 

다음 책의 목표는 그다음 책을 낼 수 있도록 팔리는 것일 겁니다. 이제 겨우 첫걸음일 뿐이지만, 평생 쓰며 살고 싶다고 감히 다짐해봅니다.

 

그럴 땐 바로 토끼시죠

사랑스러운 분홍색 김토끼로 유명한 지수 작가의 에세이. 토끼툰은 SNS상에서 귀여운 일러스트뿐만 아니라 핵심을 파고드는 간결한 메시지로 많은 구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살다 보면 나만의 비밀기지가 필요할 때가 있다. 초콜릿이나 빵 혹은 아끼는 장난감이나 책이 가득한 즉,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나만의 공간. 팍팍한 현실에 하염없이 시달릴 때, 학교생활이나 직장생활에 지칠 때, 당장이라도 숨어 버리고 싶은 곳 말이다.이렇게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비밀기

bo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