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에세이 <맨손 체조하듯 산다> 초고를 마감하면서 시작했다. 12월 31일 새벽까지 작업했다.
이런저런 사건에 습관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데, '1월 1일 징크스'에는 유독 의미를 둔다. 이를테면 1월 1일을 즐겁게 잘 보냈으면 행복한 한 해를 보내게 되고, 게으른 1월 1일이었으면 그 해도 게으르게 보내게 된다는... 올 1월 1일은 여유롭게 보내고 싶어서 마감을 일찌감치 해두고 싶었지만, 그런 일은 역시 벌어지지 않았다. 열심히 작업하며 작년 연말을 보내고, 결국 1월 2일 아침 9시까지 일했다. (2020년 복선...)
1월 1일 아침에는 해돋이 보러 명당을 찾아갔으나 인파 속에서 구름만 보다가 왔다. 떡국은 정말 맛있었다.
1월은 작업실에 매일 출근했다. 굿즈를 제작하고, 포장하고, 발송했다. 프리랜서가 된 후로는 '매일 무조건 해야되는 일'이 딱히 없었는데, 배송 기다리는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24시간 이내 발송을 원칙으로 했다. 익숙치 않은 일을 하려니 힘들었다. 발송 물량이 많은 날은 온몸이 아팠다. 온몸 아픔의 주범 = 2020년 미니 달력. 발주 해오는 족족 나갔던 효자 상품이다. 덕분에 1월 따뜻했다..
상품을 판매하는 일의 정말정말정말 좋은 점! 매일의 노동과 수입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쌓여있는 택배상자들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매일 오후 두세시쯤 작업실에 출근하고, 작업하고 굿즈 포장하고 발송하고.. (사실 작업은 주로 집에 와서 밤~새벽에 했다. 작업실에서는 굿즈 관련된 일을 주로 했다.) 이런 일상에 관성이 생겨서 아주 편안해졌을 때쯤 일이 터졌다.
아주 맑고 화창했던 어느 날, 작업실이 침수됐다.
비오듯 내리는 배수관 물에, 후다닥 작업실을 뺐다. 코로나가 심해지고 있던 차라 돌아다니는 게 자유롭지 못하던 시기였다. 상황 좀 잠잠해지면 새 공간을 알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죽어도 집에서는 일이 안 될 것 같아서였는데, 막상 집콕 몇 달 억지로 하니까 그 나름대로 적응이 됐다. 코로나 잠잠이 요원하기도 하고, 작업실을 다시 구하는 날이 과연 올지 모르겠다.
기쁜 일도 있었다. 작년 말에 작업했던 카카오톡 이모티콘 <하트하트 김토끼>가 드디어 출시됐다. 처음 해보는 움직이는 이모티콘이라 어깨를 갈아넣었던 기억이... 무려 전체 10위도 해봤다. 이모티콘 덕분에 4~5월 따뜻했다..ㅎ
너무도 따뜻했던 나머지 열정이 불타올라서 바로 다음 이모티콘을 제안했다.
그러던 어느날 CJ ENM DIA TV에서 연락이 왔다. 일러스트 상품을 제작/유통/판매해주는 채널을 만들 예정이라고..! 인스타에서 정말 유명한 다른 작가님들과 함께 계약하게 되었고, 스마트톡 사건으로 '굿즈는 당분간 안 해!' 하고 닫혀 있던 마음이 스르륵 열려버렸다. 처음 발매되는 제품군은 엽서, 포스터 등이었다. 나는 가지고 있던 그림들을 몇 개 추려 보냈다. 몇 주쯤 지났을까, 정말 예쁜 샘플 상품들을 배송 받았다. 내가 손 놓고 있어도 일이 진행되는 그런거 정말 짜릿하고 행복하다. 내가 더 잘해야지..ㅠㅠ
상반기에는 출판사 세 곳과 일을 했다.
(1) 카멜북스. 글과 그림이 들어간 에세이 작업. (7월, <맨손 체조하듯 산다>로 출간) -> 연초에 초교 넘기고, 죽음의 교정을 한 세 번? 거쳤다. 모든 마감일에 밤을 꼴딱 샜다. 번번이 몸살, 구순염 같은 것을 앓았다. 상반기는 거의 이것에 나를 갈아넣었다. 책 만드는 일은 정말 너무너무 힘이 들지만, 이만큼 애착이 가는 일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
(2) 다림. 청소년 교양서 삽화 작업을 했다. 기획, 스케치, 채색 모두 상반기에 해냈다.. 첫 삽화 작업이라 쫄리는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글 작가님께 누가 될까봐 걱정이 많았다. 8월 출간 예정.
(3) 위즈덤하우스. 만화 느낌의 그림 에세이 작업. (12월 출간 예정) -> (4부 글 원고를 픽스하고, 1부를 마감했다. 하반기의 나도 힘내줘,,)
상반기에 한 일은 이게 다가 아니다..
동물권행동 카라와 함께, 동물권에 대한 웹툰 '우리 같이 살아요'를 제작하고 발행했다. 카카오 같이가치 채널에 10화가 업로드되었다.
https://together.kakao.com/magazines/1220
이후 NHN 고도 인스타그램 채널에 고도툰 연재를 시작했다. 상반기에 1~21화 제작을 완료했다.
이외 홍보툰, 외주툰 등을 8건 진행했다.
마감에 치여 1월 1일을 보냈던 복선은 결국 뜨거운 2020년 상반기로 이어졌다.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는데 들어오는 제안마다 욕심이 나서 놓지를 못했다. 마감은 게으름뱅이도 움직이게 한다.
이 포스팅을 쓰는 7월도 바쁘게 보내고 말았다. 8월엔 좀 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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