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도 최저 기온이 영상 5도 정도에 머물길래 올 겨울은 유난히 따듯하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영하권으로 내려가더니, 요새는 눈이 많이 온다.
밴쿠버 겨울은 온통 안개 낀 회색이라, 눈으로 보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회색 회색 회색.
오일 파스텔의 매력은 '아주 정교하게 그리지는 못하는 것'에 있다. 종이에 투박하게 놓인다. 그래도 조금은 세심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서 정물화를 시도했다.
역시 모든 그림의 완성은 흰색 하이라이트다 ㅋㅋㅋ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오일파스텔 정물화. 다음번에는 컬러로 도전해야지.
한참 마감 시즌이었다. 게다가 최종 원고.
<로맨스는 별책부록> 보다가 눈물 난 지점이 있는데, 바로 한 (또라이) 작가가 마감 직전에 출판사에 계약 해지서를 보내고 잠수 탄 장면이다. 글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끝내기가 너무 무서워서, 출간을 앞두니 자기 글이 쓰레기 처럼 느껴져서 그냥 버리고 도망친다.
작가를 말리러 온 편집장이 이렇게 위로해준다.
현실적으로 책은 얼마 안 팔리고, 초판 3000쇄니까 쪽팔려봐야 3000명한테 쪽팔릴 거라고. 그렇지만 우리가 보기에 작가님 글이 좋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기 때문에 2쇄, 3쇄 찍을 수 있도록 노력할거라고.
내내 무섭고 무섭고 무서워하던 내 모습이 도망간 작가한테서 보여서, 그리고 편집장의 따듯한 위로에서 눈물 핑..
나는 겨우 안 도망가고 원고 마무리 작업을 했다. 편집자님이 추가로 요청한 사진도 찍고, (사진이 다 푸른 회색이다. 자연광이 저렇다.)
글도 많이 고쳤다. 1교에서 2교, 2교에서 3교 넘어갈 때 글을 너무 많이 고쳤다. 기껏 문장도 글도 다듬어주었는데 갈기갈기 고쳐진 원고를 보면 편집자님이 화날까 싶어서, 이번에는 많이 안 고치려 했는데. 야속하게도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계속 눈에 보인다. 결국 이번에도 꽤 고쳤다.
원고 작업하면서 느낀건데, 출판사와의 계약, 그리고 편집자님과의 마감 약속이 없으면 책을 절대 못 냈을 것 같다. 계속 뜯어고치고 싶고, 너무 불안하고,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후회 남을 글은 쓰고 싶지 않은데, 내 글이 읽힐 가치가 있을까, 내 글에도 다른 작가들 글처럼 특색이 있을까. 걱정하고 고치고, 걱정하고 고치고, 걱정하고 의심하느라 내 글은 절대 세상에 못 나갔을 것이다.
피땀눈물 그리고 걱정과 불안이 잔뜩 담긴 그간의 원고 파일 세 개.
결국 마감기한 하루가 지나 보냈다. 밤에 보내고 자려 했는데, 불안해서 다음날 오전에 한 번 더 보고 보냈다. 보내고 나서도 한참 뒤적이다가, 이대로는 못 살겠다 싶어서 힘껏 덮었다.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버렸다!
출판사에서 읽었어! 읽었어! 읽었다구!! 저 초록색 1이 얼마나 사람 긴장하게 만드는지 몰라.
휴,, 책 얘기하려니까 또 불안해진다.
요새 듣는 '구성' 수업에서는 이런 그림을 그렸다. 말..
마감 후에 받은 최고 스트레스는 mixed media 수업 숙제였다. 아크릴 물감에 젯소니 젤이니 섞어서 재밌는 질감을 내는 수업인데, 되게 자유로운 숙제를 내준다. 이게 맞나? 싶어서 일주일간 고민고민.
배경을 이렇게 막! 만들고,
장난감 병정 책에서 귀여운 친구들을 오렸다.
나는 딱 보면 귀엽고 예쁘지만 조금 보다보면 약간 기괴한 걸 좋아하는 이상한 감성이 있는 것 같다.
이번에는 '싸울 수 없는 싸움꾼들'을 오려놓고는 혼자 낄낄거렸다. 왼쪽이랑 오른쪽이 싸우는 건데, 왼쪽은 진짜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너무 작고, 오른쪽은 커다랗지만 싸울 수 없는 아이들이다.
바로 이 성을 두고 싸우는 거다!!! 아름다운 디즈니 성을 그렸다.
작업 방에는 나몽이 출입 금지인데, 그럴 때면 꼭 고래~~~~고래~~~~~~~~~ 소리지른다. 그러다 포기하겠지, 그러다 지치겠지 하지만 절대 지치지 않는다.
결국 들어오게 해줬더니 안정을 찾았다. 귀여워.. 너도 내가 좋은거지..?
캔버스에 그리고 자르고 오린 친구들을 붙였다.
이게 아닌가 싶어서 수업 가기 전날 결국 하나 더 만들었다.
스트레스 풀리는 젯소 뿌리기~~룰루 딱 이때까지는 즐겁기만 하다.
이번에도 말을 그렸다. 유니콘 처럼 생긴 숲 속 말을 의도했다.
난 이 말 쫌 맘에 들었는데, 선생님은 '싸울 수 없는 싸움꾼들'을 더 좋아하신 것 같다.
아무튼 마감 전후의 일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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